이 영화에는 '한국형'이란 수식어가 잘 붙는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 스타일은 아니다." 혹은 "한국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가 되겠다.
몇 달 전부터 질질 끌던 이 영화 <괴물>의 마케팅은 사람을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이번 영화의 마케팅 담당자가 누구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질질 끄는 마케팅은 겉만 번지르르 하고 알맹이는 별 볼일 없는 영화들이 하는 마케팅이다. 마치 '용가리'가 그러 하였고, 대부분의 시리즈물의 두번째 편이 그러하듯 말이다.
힘들게 모아온 영화관 마이리지를 못쓰게 배급사 차원에서 막은 기상 천외한 아이디어는 청어람인지 쇼박스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사사로운 감정을 차치하고 서라도 아직은 좀 모자라 보인다. 마지막 불 점화 장면에서의 극악의 CG처리와 이것 저것 끼워 맞추려다가 짬뽕되어 버린 엉성한 줄거리가 아쉬운 영화다.
영화의 중심 줄거리인 네 가족 속에 함께 살아가는 중학생 현서를 지극히 사랑하여 자신의 전재산, 목숨까지 걸어서 구하려 가는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 고모의 모습은 유교 사상에 입각해 가부장적 가계를 이루던 구세대 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회를 이끌어 가는 정부, 군경, 의사(엘리트)의 모습은 이들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주긴 커녕 무시하기 바쁘고 미국의 움직임에 쉽게 놀아나면서 정작 제대로 하는 일도 없다.
결국 미국의 지시(Order)에 의해서 내려진 결정으로 인해 우리 나라의 중심인 한강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괴물(Host)가 점점 자라기 시작한다. 결국 커질 대로 커진 괴물은 실체를 들어내게 되고 이 괴물은 우리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무작정 도망가지 않고 깝죽대넌 놈이 있었으니 이 두놈은 미국놈 도널드와 현서의 아빠 강두다. 도널드의 죽음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미국은 존재가 불분명한 바이러스를 핑계로 화약 약품을 살포하기에 이르른다.
순간 흔들리던 괴물은 결국 학생운동 출신의 삼촌이 던진 화염병에 양궁(스포츠) 선수인 고모의 화살에 그리고 아버지의 창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결국 아버지와 딸을 잃은 것은 한강 둔치에서 컨테이너 박스에서 사는 강두다. 감독은 이 영화를 오락물이라고 칭하였지만, 별로 웃기지 않는 블랙코미디가 되어버린 영화와 상술만 돋보이는 마케팅 속에서 씁슬한 마음만 밀려온다.